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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보고2013.01.18 10:47



1부


오늘의 이야기 소재는 광해입니다.

"마흔" 역사를 알아야 할 시간(본저)이라는 책을 참고하면 좋습니다.

오늘 제가 이야기할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 굉장히 엇갈린 일이죠. 세종, 성조 등인데 '광해군'이라는 왕자시절의 이름으로 폭군 등의 문제가 있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연산군과 함께 폭군이라는 이미지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박정희가 그렇듯, 폭군이라기 보다는 훌륭한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훌륭한 사람이라면 왜 쫓겨 났을까? 역사 스페셜에서도 다뤘듯이 계시라는 상궁, 썸씽이 있던 궁녀와의 일로 쫓겨났다고도 하는데 어떤 것이 진실일까?

이제 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오늘의 키워드가 있어요. 그 키워드는 한 마디로 요약하면 "백성에게 전쟁의 아픔을 주고 싶지 않다"라는 "백성"이라는 것이 광해군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광해군의 머릿속에 차 있었다고 하는데, 고급한 말로 포장하자면 광해군은 그 나름의 문화투쟁을 벌였다고 하는데 culture war, 임진왜란과 함께 조선의 전기가 끝나고 후기가 시작될 때 새로운 조선을 만들려고 하다가 실패했다고 본다. 폭군으로 보지 않는 사람이고, 실패한 한 사람의 혁명적인 정치가라고 봅니다.

몇가지 키워드가 더 있는데 첫째로, '임진왜란때 엄청난 공을 세웠다'는 것이다.

조선의 모든 왕들은 광해군을 빼고 26명이 있었어요. 광해군은 조선의 모든 왕들 중에 여행을 가장 많이 한 왕이었다고 합니다. 여행을 많이하라는 말이 있죠? 광해군의 여행은 '해야만 됐기 때문에 한', '시대가 그에게 강요한 비참한 여행'이었다고 합니다. 조선 팔도를 다 돌아다니며 전쟁중에 군량을 모으러 돌아다녔던 것이었습니다. 또 백성들에게 나라가 망하지 않았음을 알리고 마음을 달래 의병활동을 일으키도록 여행을 다닌 것이었어요. 왕들에게 기껏 여행이라는 것은 이따금씩 아버지나 어머니의 묘소를 참배하는 것이 있었지만 그것 마저도 신하들이 반대하고 했었다. 왜냐면 백성들이 비참한 상태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죠. 신하에게 압박이 들어올 테니까요.

하지만 광해군은 시대가 그에게 비참상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어요. 전국 각지의 백성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고 시체가 즐비하고 굶주린 일들을 눈으로 확인한 것이지요. 광해군의 아버지 선조는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 도망가느라고 바빠서 ㅎㅎ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왕이었지만, 서울을 버리고 의주까지 도망가고 말았지요. 나중에 백성들이 알고 나니까 얼마나 화가 났을까, 왜군이 들어오기 전에 경복궁에 불을 질렀지요.

백성을 외면한 아버지는 평양 쯤 가다가 광해군과 임해군을 전국을 돌아다니며 군량을 조달하도록 시키게 되었죠. 임해군이 잘 했으면 오늘의 주제는 광해군의 형이었겠죠? ㅋㅋ 광해군은 돌아다니면서 백성들을 위로하고 곧 수복하고 돌아올 것이라며 기를 돋았지만, 임해군은 음식이나 숙박에 대한 불평을 했고 이에 백성들은 임해군을 잡아 첫째 왕자를 일본군에 넘겨 버리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광해군은 못난 형이 일본군에 잡혀 있는 상황에서 일본 군대에 몸값을 지불하고 임해군을 데려오게 된다.

(왕자의 품격ㅋㅋㅋ)

그렇게 광해군은 7년동안을 여행하며 의병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고, 여러 품성을 보며 많은 백성들은 광해군을 차기 왕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서울이 수복된 후에는 서울의 치안을 담당했고 정유왜란에도 전라도 경상도 지역을 돌며 여러모로 지원을 했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도 나오지만 긴 창을 200여 개를 만들어 달라고 하며 전쟁터에 나온 이야기가 나온다.

아버지는 광해군을 싫어하는데 왜냐, 비교당하고 명나라에서 편지가 왔는데 '못난 아버지와 달리 너는 다음 왕이 되어 잘 할 것이라'는 구절이 있었고 이로 아들을 경쟁자로 여기게 되었다. 광해군을 아웃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정식 왕후가 낳은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정식 왕비에서 낳은 아들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늙어서 새 장가를 간다. 그건 젊은 아가씨랑 자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재 세자가 마음에 들지 않기에 새로 세자를 책봉하기 위해서 결혼을 간거야. 못난 왕, 이 집안 전통이 아주 안좋아!! 영조도 그렇고ㅋㅋ

새 어머니가 광해군보다 나이가 9살이나 어렸고, 새로운 아들이 태어나는데 영창대군이라고 한다. 광해군의 문화투쟁이 실패한 원인이 '영창대군'이라고 한다. 결국 광해군이 왕이 되었는데, 광해군을 정말 좋아하는 신하들이 있었고 개혁파, 의병활동 출신들이 그랬다. (북인, 대북 당파) 또한 광해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신하들은 대부분이었는데 선조와 함께 궁궐을 버리고 도망을 가던 사람들이었고 광해군이 껄끄러웠다. 정치는 예전에 했던것 처럼 신하들이 하고 광해군은 예전의 왕들처럼 방관자로 남기를 바랐다. 하지만 앞서 본 것 처럼 광해군은 백성을 위한 현왕직접정치를 생각했고, 실권이 신하들에게 있는 조선 왕조의 기본틀을 거스르는 것이었다.

북인, 남명 조식의 생각은 나라의 현왕이 있으면 열심히 일하는 것이었다. 이명박이나 박근혜가 권력을 잡으면 장관이나 총리 자리를 줘도 정치에 안나가고 까는 것이 제대로다 이것이지 ㅋㅋ 완전히 반대는 남인, 퇴계 이황인데 왕은 원래 별로인 것이고 똑똑한 신하들이 정치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광해군은 밀린 것이다. 말하자면 소수파 정권을 가졌던 것이지. 노무현이야. 여권에 탄핵당하고 시민의 힘으로 탄핵을 이겨내지만 권력을 가진 재벌들에게 압박당해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ㅎㅎㅎ

악성 세금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공납인데 2~300년 전에 인삼이 나던 곳에 인삼이 없고 멧돼지가 나던 곳에 멧돼지가 없고 하니 공납을 할 수 없었고 이에 공납을 돈으로 대신하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오는데 여기엔 바로 골목상권을 파괴하는 양반들이 있었다, 이말이지. 군포에서 멧돼지를 공납해야 하기 위해서 서울에 올라와 남대문에 가서 사면 100만원인데, 좌의정이 파는 곳에 가서 사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사면 1000만원이고, 인삼은 우의정이 해먹고 꿩은 누구가 해먹고 그런 것이지. 이에 광해군은 폐해를 잘 알고 있었고 세금을 대신 땅 임자가 돈을 내도록 하는 것으로 한다. 공납을 없애고 필요한 만큼 궁궐에서 구입하도록 하겠다고 제도를 바꾸는 것이다.

이에 백성들은 만세를 외치고 양반들은 죽는다 소리를 하는 것이다. 땅을 가진 이들은 안 내던 세금을 내니 죽고, 서울에서 공납 비리를 하던 관료들은 재물이 없어지니 죽어간다고 이야기 했다.

그리고 토지 장부를 만들라 한다. 

그간은 토지 장부가 없었으니 농민들이 논이나 밭을 양반, 지주들이 수탈하고 농작물을 가져갈 수 있던 것이다. 나라의 입장에서 세원이 뚜렷해지니 상당히 합리적인 정책이었던 것이다. 임진왜란 통에 문서가 없어져서 많은 평민들이 양반이 되었다고 역사책에서 그러는데 거짓말입니다. 전쟁통에 약한 사람일 때 노비가 되어버린 사람이 훨씬 많습니다. 내가 바로 서울대 나왔다, 하면 서울대 나온 것이 되나요? 문서가 없어지면 외려 노비가 됩니다. 양반이 마음을 먹고 노비라고 우기면 노비가 되고, 아니라는 증거가 없으니 평민들은 그냥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인구 장부, 토지 장부를 만들라 하는데 양반들은 뭐라하는가요? 그것을 측정하고, 장부를 만드는 종이값이니, 보관비니 하는 것이 지금 부담스럽기에 하지 말자고 합니다. 말이 되나요?

또 궁궐을 짓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나중에 양반들이 무리했다고 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수도에 궁궐이 사라졌습니다. 이제 외국에서 사신도 옵니다. 이런 것이 사실은 많은 백성들에게 일자리를 주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무리하는 큰 궁궐인 경복궁은 짓지 않았고 창덕궁 등의 작은 궁궐을 몇개 짓습니다.

또한 남쪽과 북쪽을 보니 전운이 감도는 것입니다.

만주족이 청나라를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는 임진왜란때문이죠. 요동지역에서 여진족을 누르고 있던 군사세력이 명나라 컨트롤타워였고 그 사이 임진왜란이 크게 벌어졌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조선으로 막으러 들어온 차에 여진족이 세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만주에서 명나라와 교역을 하고 명나라 사정에 밝던 사람들이 누르아치가 된 것이죠. 역사를 보면 북에서 어떤 세력이 일어나면 항상 조선을 침탈했는데 그것을 보면 중국 본토로 나가기 전에 조선을 미리 손을 봐놓고 가는 전략을 썼습니다. 저번에 명나라가 많이 도와줬으니 명나라를 도와야 한다고 신하들이 주장했지만 광해군이 보기에는 명나라를 편든다면 청나라를 적으로 돌리고, 청나라 편을 든다면 명나라를 적으로 돌리기에 이에 두 편을 다 들고 중립을 지키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다.

임진왜란을 겪으며 거짓을 이야기하지 않고, 솔직한 사정을 이야기 하고 지금은 도와줄 수 없다고 했죠. 한 쪽에는 대놓고 도와줄 수는 없다고 했죠. 명나라가 군대를 요청했을때, 1만 2천명의 총 사령관을 강홍립으로 정했어요. 직업 군인은 아니었고,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죠. 그래서 전쟁에서 항복을 하고 포로로 있다가 대다수 조선으로 살아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북쪽 외교에 신경을 쓰는 동안 일본 외교에 소홀했을 것 같나요? 전부는 아니지만, 전쟁때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던 사람들을 돈을 주고 데려옵니다.

현대로 보자면 6.25 전쟁 이후 납북된 사람 납치된 사람 많이 있는데 그 노력을 했을까요? 돈을 요구하면 "이것 가지고 무기 만드니까 못 줘!"라는 것이 아니라 일단 생명을 살려야 하니까, 돈을 주고서 데려오는 것입니다. 지금도 여러 현실정치와 외교에 대해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임진왜란이 지나고 조선왕조실록, 전주 한 군데에 남았습니다. 전쟁통에 나머지는 다 사라지고 두 선비가 나라의 중요한 기록을 사비를 들여 보관을 했던 것입니다. 이에 실록을 판각하고 새로 안전히 보관하게 복사본을 만들고 용비어천가를 다시 찍어서 나누어주고 하는 국정 홍보를 하기 시작합니다. 예전에 세종은 삼강행실도를 한문으로만은 쓰지 않고 훈민정음으로 써 배포하자고 했는데, 이에 광해군은 삼강행실도를 훈민정음으로 배포했고 임진왜란 동안 보았던 삼강행실에 어울리는 미담들과 인물을 보충했으며 이에 도덕적 가치를 공유하게 된 것이다. 

또, 전쟁 이후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하여 광해군이 허준을 전폭적으로 지원하여 동의보감을 완성하게 했다.

이제 광해군이 실패한 이유가 나타난다. 배 다른 동생인 영챵대군의 외할아버지가 반역을 모의해 그를 내치고, 인목대비를 폐위하게 된다. 이에 역모를 꾀한 자들에게 더욱 모질게 해야 했는데 잔당들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여지를 주게 된다.

정조는 정예병사를 자기 주변에 배치했고, 광해군은 정예병사를 국경에 배치했죠. 그렇다 보니 서울에는 정예부대가 없었고, 쿠데타에 성공한 병사의 숫자들이 단 천명이었다고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광해군은 자신의 안위를 책임질 정예부대가 없었다고 하는데, 인조반정에 성공하고 이 사람들이 정해군의 장수들을 치며 반역하게 되는 일로 이어진다.

임진왜란 이후, 남에서는 도쿠가야 이에야스가 일어났고 북에서는 청나라가 일어났는데 조선에서는 아무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변화를 꾀했다고 한다. 비교적 개혁적인 세력이 정권을 잠깐은 잡았지만 오래가지 못했고 보수적인 세력이 다시 일어났다. 때는 17세기, 당시 서구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결코 뒤지지 않은 개혁의 시도였다. 물론 실패했지만 우리의 역사를 너무나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비유가 너무 찰져요 ㅋㅋㅋㅋㅋ)


2부: 질의응답 시간


Q. 광해 영화나오고 노무현 지지자들에게서 많이 연락이 왔다. 서민스러운.. 그런 개인의 품성이 많이 겹쳐보였던 것 같다. 하지만 개인 품성과 사회적, 정치적 영향력이랑은 좀 다른 것 같다.


A. 광해군은 좀 그렇지는 않았지만 노무현의 실수는, '신자유주의'를 세계적 흐름으로 본 것이 잘못된 판단이었다. 지금에서는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10년전에는 좌고 우고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보았다. 지금 대선을 보아도 복지, 복지 했는데 한 박자 느린 뒷북이었다. 세계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뒷 북 중의 뒷 북이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면서 미국이 환율을 가지고 한국을 흔들었습니다. 수출 국가니까, 이후 노무현은 한-미 FTA를 추진하는 쪽으로 변합니다. 이번에 미국이 왔죠? 왜 왔을까, 축하하러? 민영화 하라, 무기 사라 그런 것이죠.

-여기에 녹색당의 의미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빠져있는 한국의 병은 '과잉 산업화'로 부터 옵니다. 우리가 산업화로 잘 살게 되었다는 것은 뻥입니다. 뻥뻥뻥뻥!! 반월에 공단이 만들어져서 취직을 했어요. 월급을 받아요, 수입이 생겼어요. 잘 살게 된 것인가요? 물가가 가파르게 높아졌어요. 그 공장이 돌아가는 만큼 물건을 팔아야 하니까요. 국민 소득이, GDP가 천 달러가 되면 여러분의 요구 무엇이든 다 들어주겠다고 박정희가 그랬죠. 2만달러가 넘은 지금 무엇일까요?

-생산과 소비와 소유의 굴레에서, 적정한 수준 이상의 산업화는 행복보다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이죠. 지젝이 잘 지적했죠. 서울에서 인천까지 지하철을 타면 나무를 20그루 심었다고 하는 것 완전 뻥이죠. 지하철로 아무리 여행을 해도 나무는 단 한 그루도 늘어나지 않아요. 이거 왜 사기적으로 말해요? 그냥 비율적으로 이산화탄소가 적다고 하면되지요. 전 세계 대부분의 가정들은 1달러로 생활을 하고 있어요. 그럼 우리는 2만달러, 2만배 잘 삽니까? 절대 아니죠. 결국 이런 과잉 산업화를 불러온 자본을 우리가 통제하지 않았다, 통제는 커녕 노예가 되어 있는 것이죠.

-생태적이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모든 것이 유기적인 관계에 있다는 것이죠. 지구 아니 우주의 존재 모두가 긴밀히 연결되어있다는 것입니다. 후쿠시마에서 원자로는 터졌지만 한국의 원자로는 안전하다? 고리, 영광 다 터졌어요. 중국은 몇 백개의 원전을 계획합니다. 서해에 두고 있어요. 어디선가 터질 거에요. 중국거는 아직 안 지었고, 짓는데 시간이 걸리니까. 또 노후 원전이 터지고요. 세상에 있는 가장 오래된 원자로는 어디 있나요? 고리 1호. 멈추면 어떻게 하는지 기술이 없어요. 그래서 계속 가동하는 거에요. 어디서 터지든 결과는 거의 마찬가지, 한국을 다 뒤덮는 것이에요.


Q. 지속가능한 생태계가 지속될 수 있는 역사적 시점이 언제일까? 산업혁명 이전 혹은 농업 이전?


A. 조선시대다. 학교에서 배운 것 보다 훨씬 교통이나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문화가 엄청나게 발달했어요. 안동과 영주의 서원들, 그런 유교 서원들이 온 전국에 다 있었어요. 불교의 경우도 마찬가지 국보나 보물들이 각 지방에 골고루 퍼져있거든요. 서울이 차지하는 문화적 비중이나 집중도가 대단히 낮았다고 보는 것이죠. 지역에서 가까운 곳에서 공부하고, 배우고 살았다는 것이죠. 대개의 선비들도 서울에서 벼슬을 하다가 고향에 가서 죽었고, 거기에 여전히 사당이 있어요. 그런 것들이 가능했던 것을 보면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농업이 아주 훌륭하게 발달을 했던 것입니다. 밭을 윤작하는 방법이 아주 혁신적이었죠. 세계 어느 나라도 그런 수준이 되지 않았어요. 

-1300년대, 최소의 자원으로 최대의 경작을 할 수 있었어요. 상업적 목적이 아닌 자급자족의 목적이었고요. 기근이 약했고, 그에 대한 생존율이 높았어요. 18세기, 19세기 유럽에서 기근이 들면 전체 인구의 1/3이 굶어 죽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찰스 디킨슨이 썼던 것 처럼 산업혁명이 일어났을 때 그 비참한 아이들의 노동이 있었던 것이죠. 조선시대엔 마을에서 순환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국인라는 문화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역 정체성이 강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조선시대에 보면 인구 밀도가 상당히 높았어요. 농업, 자급율이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그 마을이 유지될 수 있던 것입니다. 지금 아프리카를 보면 평방킬로미터에 다섯명, 이렇죠.

-그런데 왜 일제 시대에는, 그런데 왜 해방 이후에는 그렇게 어려웠는가? 우리가 살던 방식이 깨져서 그렇죠. 화학 비료가 들어오고, 근대 의학이 들어오며 예방주사 등이 인구의 자동 조절 능력을 상실하고 농업은 쌀 농사들만 짓게 일제가 강요했고 그런 부분이 있죠. 조선 시대 인구가 약 2천만이죠, 그 정도가 적정 인구인 것 같아요.

-아까 양반의 이야기가 좀 그랬지만, 전쟁 직후였고 신분제 하의 다른 나라의 지배자들에 비해서는 굉장히 부드러웠지요. 유교적, 도덕적 교양이 있었고요. 그 실례가 다른 곳들의 양반들은 성을 지었지요. 농민들에게 공격받을까 두려워서지요. 어느 나라에든 악명높은 감옥이 있지요, 런던탑, 바스티유 등.. 조선시대에 그런 감옥이 있었나요? 그 때가 아주 평화로웠다는 것이 아니라, 그 나름의 문화가 있어 조절이 가능했다는 이야깁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가능할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은 이미 자본에게 착취당할 운명을 가지고 있고요, 인구가 조금 줄어들어야 종의 다양성을 위해서도 좋고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위해서도 그렇다. 여러분 한 세대는 출산을 거부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자본에게 먹이는 카운터 펀치! 이 세계 체제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이 아이를 낳아서 또 자본의 노예로 살아가게 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옳은가? 확실히 독립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면 열명을 낳아도 좋고 백명을 낳아도 좋고 물리적으로 안되겠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지 않으면 출산을 거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 의료를 거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죠.

-우리가 헛숫자에서 살고 있어요. 여자의 평균 수명이 80세, 남자는 77세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건강한 80세인가요? 50세가 되면 당뇨약을 먹고 고혈압 약을 먹고, 70세가 되면 물리치료를 먹고 요양원에 있고 그럽니다. 의료 기회를 안 드릴 수는 없지만, 의미 없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저 스스로는 뚜렷한 지침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이후 건강에 큰 위헙이 온다고 해도 장기를 이식받고 적출하고 하는 수술을 받을 일은 없습니다. 때가 왔을 적에 흙으로 돌아가면 박테리아가 나를 뜯어먹고 그렇게 땅이 더 좋아지고 지렁이가 기어다니고 민들레가 예쁘게 피고 그것이 내가 아닐까? 지금의 과잉진료, 과잉의료에서 벗어나고 죽음을 의식적으로 당당하게 맞는 사람이 많아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의학의 발전 역시 과잉 산업화의 축입니다. 태풍이 불면 나무가 넘어지게 되는 것이 당연한데 지금의 의료는 태풍이 불어도 나무 한 그루 넘어지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죠. 지금 당장은 황폐하지만, 5년 10년 지나면 그 자리를 다시 숲이 됩니다. 인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죠. 100명의 아이가 태어나면 100명 모두 100세까지 살아야 한다는 것은 욕심이죠.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지 말아야해요. 지금은 산업에 의해 좋게 포장이 되고 있지만, 약과 수술로 100세까지 억지 수명을 늘린다. 그것도 공짜가 아닌 가족을 착취하면서. 인명을 빙자하여 살아있는 모두를 인질로 삼는 자본의 힘이죠. 의료 연구를 중지시킬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선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의사라는 말은 원래 외과의사라는 말이었습니다. 손가락이 잘렸죠, 붙여야 일을 합니다. 하지만 성형만 하죠. 의료 혜택은 위험한 작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더 필요한 것이죠. 손가락을 냉동해 서울까지 와야 합니다. 이제 서울로도 안되고 외국에 나가야 할 수도 있어요. 


Q. 교수님의 역사관이 궁금하다.


A. 하나는 소유와 지배의 차원에서 (독: 하벤) HAVE, 하나는 사랑과 존재의 차원에서 BE에서 역사를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사랑은 모두 잘못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 헤어지자, 이러면 안된다고 하죠. 넌 아들이기에 판사가 되어야해 이런 것이죠. 사랑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기때문에, 참으로 어렵지만 그것이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지켜주고 응원하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 우리가 꽃을 사랑할 때, 나무를 사랑할 때 그렇잖아요.

-우리는 학교에서 언제나 역사를 배울 때 소유와 지배의 역사를 보았어요. 권력이 누구에게 가느냐, 근대화 산업화가 중요하다 그렇게 배웠지요. 그런 역사를 보며 그런 역사의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에요. 이제 사랑의 역사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우리에게는 권력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인간마저도 우리가 사랑하는 생태계의 일부로 보는 그런 역사는 아직 없어요. 이제 국가별로 역사를 보면서, 우리 역사 너희 역사 이렇게 볼 수 없어요. 이상적이죠. 이상이 물론 내일의 현실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다른 많은 존재들에 비해서 나쁜 짓도 하지만, 이상적인 꿈이 있지요.

- 우리가 중세로 돌아가서 왕한테 이래요. 법률 앞에 우리는 평등하다! 그러면 왕이 그러겠죠. 미쳤군. 얘 런던탑에 올려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이것은 몽상이 아니고 현실이 반드시 된다. 역사가 그랬고요.


Q. 소유와 지배의 역사를 배웠기에, 지금까지도 지배 계급에 의해서 소유와 지배가 이뤄지는 역사고.. 맑스가 그랬듯 지배적인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라고 하는데, 사랑의 역사로 본다면 역사 발전의 주체를 무엇으로 잡아야 하는지?


A. 역사의 주체는 이념적으로 본다면 우주 그 자체죠.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니라고 보이는 것 조차도 역사는 인간만의 역사가 아니고 우주의 역사이기에 분명한 구성원이죠. 하지만, 우리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안에서 인간의 '역할'이고, 그 '인간'을 말할 때 보통 시민들의 안전, 평화, 생각이 중심이 되어야 하죠. 더이상 역사에서 '발전'이라는 개념을 써서는 안될 것입니다. 산업화와 구별이 되지 않기 때문에.. 평화와 공존에 대한 역사를, 우리가 어떻게 평화를 깨뜨렸는가, 어떻게 공존을 망쳐왔는가를 보아야죠. 그래서 인간의 역사를 볼 때에도 정치적으로, 문화적으로, 경제적으로 성공한 몇몇 인물을 중심적으로 보기 보다는 공동체 전체를 보아야 하는 것이죠. 그들을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능력이 공동체에게 어떻게 기여했고 평화를 어떻게 방해했는가 따져 보아야 할 것입니다.

-녹색의 세계사, 아직 쓴 사람이 없기 때문에 여러분들도 쓰기만 하면 다 새로운 역사가 될 것이죠. 생태중심의 역사가 기록이 될 것이라고, 나도 그 작은 걸음을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대 중심, 성공 중심으로 보다 보니까, 역사 교과서에서 여성의 이름을 찾기란 매우 어려워요. 그것 자체가 잘 못 되었잖아요. 남자의 역사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여성의 역사이기도 한데 그 많던 여성은 누가 다 먹었을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산 사람들은 안산의 사람들을 만나야 하는데, 적어도 경기도의 사람들! 그런데 역사에는 서울의 일만 나와있죠. 그간 그런 사고방식으로 자료를 만들고 쌓아왔기때문에, 새로 쓰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지만 그래도 노력을 한다면 조금씩 달라질 수 있고 적어도 백년 후에는 오늘 우리가 살았던 역사를 새로 쓸 수 있지 않을까? 적어도 20세기, 21세기의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분절되어 있지 않고 분절시킬수도 없다는 자연의 이치를 인정해야 하니까요. 역사를 쓰기도 하고 만들기도 하고 섭취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는 소비자로서 역사를 보지 말고 생산하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죠.

-왜 우리는 과거 벼슬했던 사람의 이름을 알고 있을까? 지금 대통령, 지금 장관들도 역사 교과서에 나온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너희도 이렇게 해 봐, 나처럼 할래? 나한테 와! 대안적인 가치의 경제, 대안적인 복지, 대안적인 수학, 대안적인 무엇, 무엇, 무엇.. 정치와 경제와 문화와 종교 신앙적인 것 까지 완벽하게 대안적인 녹색의 무엇인가? 고민하고 만들어야죠. 한 마리의 제비가 왔다고 봄이 오진 않지만, 오늘 제비가 오면 내일은 열마리의 제비가 옵니다. 미친 제비가 한 겨울에 오는 일은 없어요. 첫 제비가 날아오면 다음 제비가 또 옵니다.


Q. 생태계 안에 있는 인간으로서의 역사를 말한다면 물론 2천년 정도의 역사는 인간이 생태계를 지배하고 소유하려는 역사였다고 생각하기에,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A. 우리의 생각도 수백년 후에 현실이 될 수 있다고는 생각할 수 있지요. 인간의 겸손함을 의도적으로 배워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자원을 우리가 다 낭비하고 있고, 북극의 빙하가 다 사라지고 이제 쭉 추울 겁니다. 움덴켐, 생각을 바꿔야 할 책임을 느껴야 한다. 지상의 많은 종들이 벌써 소멸했다. 그 종들의 그 생명체들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도 치명적인 결과를 주었죠. 수퍼 박테리아 등이 출현했고, 현상적으로는 지구를 자력으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도 인간이고, 이 지구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가진 것도 인간이죠.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지구를 살리는 데에 지혜를 쏟자고 하는 것이죠. 판단의 기준을 소비에 둘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체와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자는 것이 될 것이죠.


Q. 데카르트 이후 인간사회의 기계론 적인 세계관에 대해 반대하신다는 것이고, 생태적인 사상을 보면 두가진데 하나는 인간 이성에 대한 불신, 하나는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로 자연과의 유기적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A. 1990년대부터 미국와 서양에서는 아주 인기있는 학문이 생겼어요. '뇌과학'이 생겼죠. 뇌 과학이 90년대 미국이 쏟아부은 돈은, 우주 개발에 쓴 돈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이라고 합니다. 유럽도 예외가 아니고, 그래서 19세기 초기까지 모든 학문의 중심이 철학이었죠. 바로 그 위치가 19세기 후반에 들어 산업화의 영향으로 무너졌죠. 경험론적 사고가 이성에 의한 합리적 판단의 가치에 도전하는 겁니다. 선험성을 경험성이 대체한 것이죠. 그렇게 철학에서부터 분화되고 분화된 학문들은 서로가 분절되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기가 힘들어졌어요. 그래서 이제 '커뮤니케이션'이 주목받았고 그 정점에 뇌과학이 있어요. 그렇게 많은 돈을 쓰고도 아직도 초보의 초보 단계입니다. 

-뇌 과학자들은 뇌를 연구하면서 그렇죠, 그렇게 기계적이지 않다는 것이죠. 화학도 생물도 물리도 기계적이지 않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 우주가 생성중이듯이요. 사물을 추론하고 추상화하고 이치를 요약할 수 잇는 능력, 이성이 굉장히 중요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인간의 이성이란 절대적으로 신뢰할 만한 것은 아니다는 결론이죠. 일종의 오만 아닐까? 내가 생각할 때 인간의 이성이라는 것은 선험적인 것이 아니고, 문화적이고 획득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기에 절대 신뢰할 수 없어요.

-푸코인가, 갑자기 생각이 안나는데. 다른 생명체에게도 문화적 취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문화적 취향이 이성이 되기도 하고 무엇이 되기도 합니다. 공작새를 보면 대부분의 새는 수컷이 예쁘죠. 공작새에게 예쁜 기하학적 무늬가 있지요. 진화론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이것을 가지고 말했죠. 새의 날개에 있는 저 아름다운 기하학적 무늬도 과연 진화의 결과냐고 물었죠. 창조주가 만들지 않았다면 누가 만들었느냐고. 그것이 바로 문화적 취향이죠, 암컷 공작새의 취향에 일관성이 있었던 것이고요. 무늬가 희미하거나 기하학적 문양이 없었던 공작은 없어진 것이죠. 인간의 도덕성이라는 것은 인간의 우월함을 표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취약성을 증명하는 것이라 했죠. 인간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경쟁력이 없어요. 그런 인간은, 인간들이 취약한 존재라는 것을 느낀 것이고 그 첫번째 '공생'을 생각한 것이죠. 평화, 공존, 공생이라는 것은 그냥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서 도덕이 생겼다는 푸코의 논리도 맞다는 것이죠. (진화론은 변화고, 사회진화론은 발전을 말하는 것이죠.) 공동의 경험을 통해 축적되어온 결과이기에, 이성이라는 것을 강조할 것은 없고 같은 문화의 영위자로서 인간은 하나의 가치관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Q. 언제부터 지배가 생겼을까?


A. 사유재산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그런데 인류학자들이 보면 수렵채집 부족을 보면 공동 재산을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인간의 역사에 있어 사유가 필요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수렵 채집이 쉽지 않았던 곳에서 부터 사유 재산이 생기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하고 학자들이 많이들 생각합니다.


<오늘(1/16) 열정적으로 강연해 주신 백승종 님께 박수~ 짝짝짝~~~~!!!>




Posted by 청년 녹색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