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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보고2013.02.04 12:04


■ 주제 : 호르크하이머의 도구적 이성과 육식문명

■ 강사 : 신승철(녹색당원, 철학공방 ‘별난’ 공동대표, 동물보호교육센터 추진위원 등)

■ 일시 : 2013년 2월 1일(금) l 15:00-18:00

■ 장소 : 의정부 여성회

■ 문의 : younggreens@kgreens.org



생명의 도구화, 문명의 성격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도구적 이성이라고 하는 부르주아적 이성이 육식에 있다. 먹는다는 단순한 구강성을 충족하는 행위가 아닌 '먹을 거리로의 도구화'가 있다. 공장식 축산업에 대한 문제의식, 악한 환경에서 생명을 (닭의 경우 3주안에 도축) 기른다. 닭은 사실은 12~15년을 살고 20년 정도를 사는 경우도 흔하다. 게다가 인간을 잘 따른다. 채식을 왜 하시냐고 하니, 어떤 분이 공장식 양계 이야기를 하여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우유를 먹는 락토 계란을 먹는 오버 둘 다 먹지 않는 락토오버 생선을 먹는 페스코 고기 국물은 먹지만 덩어리는 먹지 않는 비덩이 있다. 그리고 완전 채식인 비건이 있다.


여기 기후변화 축산업이라는 보고서가 있다. 이산화탄소, 메탄가스, 핵발전소의 수증기가 크게 세 종류의 지구 온난화 원인인데 이 중 축산업도 큰 이유를 차지하고 있다. 육식 문명이 지구를 심각히 훼손한다는 반증이다. 바로 밥상에서 시작되는 환경 운동이다. 탄소발자국으로 식단을 보고 나무 몇 그루를 파괴하는지 새로 계산할 수 있다. 육식문명은 생명을 도구화 뿐 아니라, 생명의 본성을 빼앗고 있다. 탄소순환과 산소순환의 균형을 맞추는 열대우림이 '소 방목장'을 위하여 파괴된다는 것은 심각하다. 육식 문명은 기괴했다. 

미국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70%가 사료로 사용되고 있다고 제레미 리프킨은 80년대에 출간된 책 '육식의 종말'에서 말한다. 현재는 바이오 연료가 역전을 했다고 한다. 제 3세계 인민의 경우 식량을 위해 동물도 아닌, 차와 경쟁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육식의 욕망을 충족해야 하는 것일까? 육식을 하지 않는다면 13억명을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계산된다.

공장식 축산 공간은 온갖 새로운 질병의 근원지이다. 그것은 항생제 남용으로 이어지고 성장 호르몬과 만나 시너지 효과를 만든다. 베지닥터에서는, 프레시안에는 사육의 부메랑이라고 육식문명이 사람을 공격한다고 기사를 냈었다. 초경의 시기가 10년에 0.68년씩 낮아지고 있다. 고지혈증과 당뇨병은 육식과 정비례의 관계에 있다. 식생활로 인한 건강 파괴 예를 들자면 암 발생은 66%이고 흡연은 44%이다. 우리는  고기가 싸다고 믿지만 그것보다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고 있는 것이다. 건강과 환경에 관해서도 육식을 피하고 줄이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성장 호르몬을 통해 적은 사료로 큰 몸집의 동물을 만든다는 것은 축산업자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이다. 대다수의 사료는 유전자조작 옥수수이며, 도시에서 배출한 쓰레기가 공장식 축산업에서 사료가 된다. 숫병아리가 돼지에게 사료로 먹여지고 있는 식의 '교차 사료' 그리고 나아가 '동종 섭식'의 문제가 대두된다.


질소순환, 탄소순환, 산소순환 중 질소는 분뇨에서 퇴비로의 유기적 순환이다. 지금과 같은 밀집형 사육에서는 분뇨는 바다로 버려지고, 인간의 130배, 도시하수의 160배에 달하는 배설물이 버려진다. 갯벌이 파괴되며 우리는 더이상 정화 장치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생명을 육식의 도구로 삼았을 때 인간을 도구로 만들게 되는 것이다.


윤리와 미 역시 보이지 않는 윤리와 미가 본질이지 않을까? 송아지를 쓰다듬으면 송아지가 눈을 꿈벅꿈벅하며 껑충껑충 뛰어다닌다. 송아지와 나는 교감하는 데에 3, 4분 조차 걸리지 않았다. 관계의 형성, 그리고 다음 날도 송아지는 나를 기억했다. 고기를 생산하는 기계로서의 송아지는 낯선 고기, 위생적으로 보이는 고깃덩이리일 뿐이다.


프랑크푸르트 학파; 호르크하이머, 마르쿠제, 아도르노, 하버마스 등은 대부분 유대인이었고 파시즘에 쫓겨 망명하게 된다. 호르크하이머의 대표 저작 도구적 이성 비판이 육식문명에 대한 비판이라고 해석해본다. 물론 도구적 이성은 이성 자체에 대한 거부가 아니다. (광기로서의 이성, 감시 이성, 계산 이성 등의 근대 이성 비판과는 조금 다르다. 가장 합리적 이성이라는 것은 준거집단을 가지고 잇는데 우리 나라의 경우는 '강남'이라고 하고, 그것을 바살리아가 말했는데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서구 이성론은 종교를 비판하면서 미신으로부터 계몽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개인의 이익, 관심를 보장하는 수단으로의 '이성'은 결국 주관적인 것이고 부르주아 국가 헌법의 수단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하는 비판을 한다. 이를 호르크하이머는 '도구적 이성'이라고 명명한다.

이것은 동물이나 생명 자연 일반을 떠나서도 인민들이 동물원의 동물이 되어 버린 것이기 때문에 비판받는 것이다. 관계 속 공동체에서 주체가 되었던 공통의 지혜는 정서와 흐름이 만들었다. 근대 속에서 이제 (지식은) '내 것'이 되고 생명을 공동체(혹은 경계선) 밖의 낯선 것으로 대상화/도구화 했다. 이렇게 등장한 주체는 과연 주체일까? 체계적인 질서 속에서 이루어 지는 이성은 소유권 주장을 위한 다른 수단인 것이다.


개인적 채식, 종교의 문제나 건강의 문제였던 채식을 사회 운동의 하나로 만드려는 흐름이 있었다. 인터넷 동호회를 통한 인디 문화 중 하나로 받아들여졌다. 2008년 광우병과 촛불로 이어진 것을 분기점으로해서 특정 나라, 특정 상황의 고기가 문제가 아니라고 보는 시선이 나타나고 고기없는 월요일이 2009년에 나타나고, 황성수 박사의 현미밥으로 채식하자, 목숨걸고 편식하자 등의 책이 발간되며 채식 운동은 힘을 얻게 된다.

아직도 서브컬쳐의 한 종류로 파악되긴 하지만 초록 급식 연대 등의 사회 단체들이 증가했다. 이후 2010년에는 유명 연예인 이효리, 이하늬 등이 채식 선언을 하며 감동과 동참을 이끌어 냈다. 2012년 5월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취임하며, 서울시청 식당에 (비건용은 아니지만) 채식 식단을 도입했다고 한다.

2008년 참살이 연구원은 채식운동의 사회화를 위해 실천했던 조직이다. 채식환경운동을 통해 학습세미나 문화행사등을 가졌고 15개의 소모임과 열댓명의 활동가가 있었던 꽤나 컸다. 분노와 화에서 출발하는 사회운동이 아닌 내 스스로부터 시작하는 사회운동이길 바란다며 활동했던 참살이 연구원은 재정문제로 문을 닫게 된다. 연구원에서 진행된 프로그램 중 1) 다양한 요리의 실험 2) 재활용, 중고 물건 나눠쓰기 3) 채식인 가요제 등이 재미있고 인기있었다.

다시 호르크하이머로 돌아가서 실용주의 실증주의의 유용성 논리와 공리주의에 의해 자본주의는 떠받들어진다는 비판은 이어졌다. 그러나 현재는 생명이 어떻게 목적이 되는가 수단일 수 밖에 없다는 공허한 대답만 돌아오는 것이 대다수다. 결국 외적 자연인 생명을 도구화하면 내적 자연인 욕망 또한 억압하게 된다. 자신의 내면 세계와 생명 에너지인 욕망도 억압하게 되며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차별로 드러난다. 이제까지의 문명은 인간의 욕망을 어떻게하면 계몽을 통해 통제할까에 대한 역사였다. 주체라는 것은 너와 나의 혹은 공동체 속의 관계 속에서의 어떤 것이지만 근대에서의 주체는 어떤 '의지를 가진 주체'가 외부에 있다고 해석한다. 지식인과 대중, 정치인과 인민 등의 이분법과 주체와 대상의 이분법은 맞닿아 있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이분법을 보라! 부르주아 시민권, 결국 소유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굉장히 이성적으로 보이는 '영양에 따라 식단을 지켜야 한다'는 말 조차도 영양학의 출발에 대해 이야기 해야 한다. 영양학은 애초에 인간보다는 축산 동물에 대한 영양이었고, 영양학의 펀딩 회사는 대다수 공장식 축산 회사이다. 인간은 미메시스적 충동과 욕망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최초의 통제는 괄약근 조절로 시작된다. (동물을 보면 걸어가며 숭덩숭덩 변을 본다) 결국 충돌은 도구주의로 까닭없이 통제된다. 육식 또한 자연적 충동이자 욕망이 아닌가 하는 말에 대해 '고기와 우유'가 공장식 축산업이 있기 전까지 그것이 우리의 욕망이었을까? 파시즘은 미메시스적 충돌, 자연과 닮아가려 했던 욕망을 정치화 하여 독재 권력이나 전쟁의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호르크하이머는 말한다. 그는 욕망만이 남게 되면 파시즘으로 가게 되기에 다시 이성을 세워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지만 이는 그의 한계라고 해석된다. 욕망은 굴절되고 왜곡되고 변형될 수 있는 속성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도구화 하는 이성의 문제이지, 극단의 욕망만이 남게 되어 파시즘으로 이어지기에 이성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것에는 논리적 모순이 있다.

동물과 사람의 보이지 않는 가정내에서의 돌봄은 더욱 많아지고 보여져야 하고, 공장식 축산의 감춰진 부분 또한 투명한 벽을 세움으로써 보여져야 하고 알려져야 한다.

채식 식단이 보장되는 교도소는 단 한 곳도 없다. 학교나 병원 또한 극소했다. 소수자의 권리가 없는 사회라는 것이지 채식을 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녹색당 생명권 의제 모임에서는 채식인의 소수자적 권리를 보장하자는 의지를 밝혀야 하고 우유급식 폐지하고 육식이 초래하는 지구환경 파괴에 대한 교육 등을 주장한다. 이러한 채식 운동에 동참할 적극적 의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육식이 좋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보인다.

1%의 특이점이 주변의 배치를 바꾼다고 한다. 도구주의 자체를 거부하는 입장도 있지만 비윤리적으로 축산하는 것에는 반대하는 동물 복지적 입장도 있다. 동물을 도구화하면 고깃덩어리에 불구하지만 교감한다면 따뜻한 흐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짝짝짝)


Posted by 청년 녹색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