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아모리: 왜 한 사람만 사랑해야 하는 걸까?>


 


일시: 2016년 5월 7일 토요일 오후 3시

장소: 서울 동국대학교 사회과학관 M455 강의실

참가비: 자율적 납부

문의: 심기용 010-3087-7566


강연자

심기용
2013년부터 고양녹색당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생태주의, 녹색의 가치에 대해서 탐색하다가 만난 신승철 교수님과 인연으로 현재 문래동 소재의 철학공방 별난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동국대학교 성소수자 모임 큗의 회장을 맡으면서 “성애와 성별, 그리고 연애 구도”에 대해서 크게 관심을 가지고 연구 중이다. ‘폴리아모리(polyamory)’라는 개념은 그 연구가 제시하는 하나의 윤리적 지향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사방팔방 폴리아모리라고 본인을 소개하고 살고 있으며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강연 내용
우리는 연애라고 하면 당연히 단 한 사람과의 일대일 연애 구도를 떠올린다. 한 사람의 한 사람과의 뜨거운/알콩달콩한/설레는 로맨스. 대중매체를 통해서 전달되는 사랑과 연애는 모두 그러한 모노아모리(monoamory)의 구도이다. 그러나 누구나 마음속에서 한 번쯤은 이런 고민을 한 적이 있지 않을까. “왜 한 사람만 사랑해야 하는 걸까?” 이 질문의 변형은 다양할 수 있다. 가령 “난 왜 애인이 있는데 다른 사람과도 섹스를 하고 싶은 걸까?”, “다른 사람도 좋아지는데 내가 나쁜 걸까?” 등의 죄의식 섞인 내면갈등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폴리아모리의 개념은 이 질문들에 대한 유쾌한 답이 될 수 있다.
주로 폴리아모리는 다자연애로 해석되고, 다자연애자에 대한 반응은 ‘이해할 수 없는 바람둥이’ 또는 ‘그럴 수 있지만 나는 그럴 수 없는 것’ 정도로 축약될 것이다. 그러나 모노아모리들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에게서 로맨틱한 기분을 느끼고 유혹된다. 다만 그것을 죄의식으로 표출하거나 기존 연애자와 이별하는 것으로 대응하면서 끊임없이 본질적인 문제에 닿지 못한다. 반대로 상대방에게 집착하거나 질투하고 끊임없이 불안해하는 정서를 보이기도 한다. 기껏해야 이들에게 내려지는 조언은 모노아모리적 연애관에 잘 순응해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 나오는 아름다운 노부부 식의 사랑을 재현하라는 것 정도이다.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모노아모리가 아니면 윤리적이지 못하다. 제대로 구속하지 않으면 상대가 떠나갈까봐 두렵다. 그러나 구속은 서로를 얽어맨다. 이 답답한 악순환에서 사람들은 사랑이란 무엇인가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이 고리는 “사랑하면 연애해야 한다”, “연애는 단 한 사람과 해야 한다”는 두 가지 고정관념을 무너뜨려야만 해체할 수 있다.
한 가지 짚고 가자면, 폴리아모리와 다자연애는 엄밀히 다른 개념이다. 폴리아모리는 정확히 번역하자면 다자 간 사랑에 가깝다. 다자연애는 연애라는 명시화된 관계를 다수 둔다는 뜻이지만, 폴리아모리는 접속connection과 변용affection을 통해 부드러운 흐름을 생성할 때 발생하는 ‘사랑’의 능력을 지닌 모든 존재를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폴리아모리는 아주 자연적 상태다. 존재가 존재와 접속하여 변용을 일으키는 것은 모든 존재의 자연적 능력이다. 접속하고 변용하는 현상은 특정 존재에게만 한정해서 발생하지 않고 우연한 마주침에 의해서 무의식적으로 발생한다. 변용을 통해 부드러운 흐름이 발생할 때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부드러운 흐름은 고정관념, 억압, 배타, 차별, 권위 등 슬픔의 정서를 유발하는 것들이 방해하지 않는다면 관계망이 성숙됨에 따라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그러므로 사랑은 불특정다수 타자와의 접속에서 무시로 발생할 수 있는 것이고, 본인의 자각 여부를 떠나 모든 사람은 태생적으로 폴리아모리일 수밖에 없다. 연애란 문화적(또는 구성적, 심리적) 요인으로 관계를 명시화하는 것일 뿐이다. 특히 모노아모리의 연애 구도(특히나 시스젠더 헤테로와 가족정상성에 부합하는 구도)는 문화적 강박관념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존재론적으로 인간이 폴리아모리라면 사실 모노아모리는 불안감, 집착, 질투, 두려움 등의 심리 기제가 강하게 작용하는 부정적 상태일 것이다. 그렇다고 일대일 연애를 없애자고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연애의 구도를 지향하든, 자신과 타자의 다자 간 사랑 욕망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다자 간 사랑 욕망이야말로 ‘특이성을 사랑하는 공동체’의 가장 근간이 되는 힘이기 때문이다. 녹색당이 지향하는 억압 없는 환대의 공동체 또한 폴리아모리적인 힘으로만 구성해낼 수 있는 것이다.
너무 길어졌으니 이만 줄여야겠다. 나머지 부분에서는 사랑은 성애와도 구분되며 성애에 관하여는 성애적 경향성과 횡단성애가 존재함을 언급할 것이다. 성애는 생물학적인 동시에 정서적인 욕망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표현되는 양상이 다르다. 성애의 양상을 우리는 페티쉬라고 부른다. 원한다면, 폴리아모리들은 서로의 페티쉬를 횡단하며 자유롭게 누구와도 섹스할 수 있다. 성애와 구분되는 것이 또 신뢰다. 우리를 일상적 돌봄/주거/경제/정치의 공동체(주로 가족이나 식구라고 불리는)로 결합하게 하는 것은 신뢰라는 점을 설명하고 변용, 사랑, 성애, 신뢰의 구도를 종합하여 다양한 공동체와 파트너쉽 구성해야 함을 이야기하면서 강의를 마치고자 한다.


강연 참고 서적

* 간단히 작가와 책 제목만 씀.

그레고리 베이트슨 『마음의 생태학』
기 오껭겜 『동성애 욕망』
다니엘 게랭 『성 자유』
바뤼흐 스피노자 『에티카』
빌헬름 라이히 『오르가즘의 기능』
신승철 『철학, 생태에 눈 뜨다』
윤수종 『소수자들의 삶과 문학』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안티오이디푸스』
질 들뢰즈-펠릭스 가타리 『천개의 고원』
펠릭스 가타리 『기계적 무의식』
펠릭스 가타리 『분자혁명』

Posted by 청년 녹색당